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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종교가 얽히다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13

과학과 종교는 오랫동안 대립과 갈등의 이미지로 기억되어 왔다. 1633년 갈릴레오 재판, 19세기 다윈의 진화론 논쟁, 20세기 스콥스 재판—이러한 상징적 사건들은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없다는 '갈등 논제(conflict thesis)'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진리의 충돌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인식 체계가 인간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두고 벌인 역사적 대화였다. 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이언 바버(Ian G. Barbour, 1923-2013)는 그의 저서 《과학과 종교》(Religion and Science, 1997)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이 분류는 현재까지도 과학-종교 담론의 기본 틀로 활용된다. 첫째, 갈등(conflict) 관계는 과학과 ..

바꾸는 게 답이다 : 에너지 전환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12

2024년 여름, 한국은 사상 최장의 폭염을 겪었다. 유럽에서는 산불이 맹위를 떨쳤고, 파키스탄에서는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21세기 들어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말이 더 이상 경고용 문구가 아니라 현실의 진단이 되고 있다. 인간 활동이 배출한 온실가스(Greenhouse Gases, GHG)가 지구 대기 중에 머물며 복사열을 가두는 '온실효과'가 증폭되고, 이로 인해 지구 평균기온은 상승하고 극한 기후현상도 빈번해지고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평가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이 1.5℃ 이상 상승할 경우 해수면 상승·생태위기·식량불안 등이 급격히 증가한다. 전 세계는 이미 1.1℃ 상승했으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2100년까지 2.7℃ 이상 ..

AI가 시민을 부른다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11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의 AI 음성비서에게 오늘 날씨를 묻는다. 출근길에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뉴스를 읽고, 점심시간에는 AI가 제안한 식당을 찾아간다. 오후에는 챗봇과 대화하며 업무를 처리하고, 저녁에는 AI가 큐레이션한 영상을 시청한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가능성이 현실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AGI는 25%의 확률로 2027년까지, 50%의 확률로 2031년까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2020년까지만 해도 AGI는 50년 후의 일로 여겨졌지만,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

전염병 OUTBREAK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10

2020년, 전 세계는 COVID-19라는 신종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국경이 봉쇄되고, 도시가 멈췄으며, 일상이 붕괴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역사 속에서 전염병은 반복적으로 인류를 습격했고, 그때마다 문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전염병이란 어느 한 지역 혹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감염성 질환을 말한다. 그러나 전염병은 단순히 질병 발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사회구조를 뒤흔들고, 인구 이동의 패턴을 바꾸며, 위생제도를 재편하고, 과학기술 체계를 혁신시킨다. 나아가 정치·경제·문화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COVID-19를 통해 전염병이 현대 사회의 글로벌화·이동성·복잡한 네트워크 시스템과 얼마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포스트휴먼 시대가 온다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09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워치가 어젯밤 수면의 질을 분석해서 보여준다. 출근길에는 무선 이어폰을 통해 인공지능이 추천한 음악을 듣고, 점심시간에는 건강 앱이 제안한 식단을 따른다. 저녁에는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 세계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우리는 이미 기술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편리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포스트휴먼 시대는 이러한 질문의 중심에 서 있다. 1. 포스트휴먼이란 무엇인가 1) 포스트휴먼 개념의 이해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인간 이후의 존재'를 뜻한다. 이 개념은 전통적인 인간 존재의 조건, 즉 생물학적 신체, 자연적 노화, 인지적 한계 등을 넘어서는 존재양식이 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08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는 밤새 우리는 기술을 신체에 삽입하거나, 기술을 몸의 일부로 삼았거나, 아니면 기술과 감각적으로 연결된 존재다. 안경을 쓰고, 스마트폰을 들고,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워치를 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다.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는 물론이고, 보청기를 사용하는 노인도, 인슐린 펌프에 의존하는 당뇨 환자도, GPS 없이는 길을 찾지 못하는 운전자도 모두 사이보그다. 1. 우리는 사이보그다 이 존재양식은 불완전하고 유동적이다. 우리는 완벽한 기계도, 순수한 생명체도 아니다. 때로는 기술이 고장 나고, 배터리가 방전되고, 네트워크가 끊긴다. 우리의 사이보그적 존재는 취약하고 의존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다. ..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다(2)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07

과학기술과 예술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예술 작품이 탄생하고, 컴퓨터 알고리즘이 음악을 작곡한다. 이러한 융합은 단순한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예술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창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 글에서는 생명과학이 예술과 만나 탄생한 바이오아트와, 기술 발전이 음악의 창작과 감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본다. 1. 생명과학과 미술이 만나다 — 바이오아트(Bio Art) (1) 바이오아트란 무엇인가 바이오아트(Bio Art)는 생명과학 또는 생명공학의 원리, 소재, 주제를 활용하여 창작되는 예술 장르다. 생명을 화폭에 담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바이오아트는 생명 자체를 직접 다룬다. 세포, DNA, 조직, 미생물 같은 생명체의 물질적 요소..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다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06

전시장 벽면에 흐르는 폭포수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방향을 바꾸고, 바닥에 핀 디지털 꽃들이 사람의 발걸음을 피해 흩어진다. 일본 도쿄의 팀랩(teamLab) 전시관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은 단순한 영상 쇼가 아니다. 관람객의 몸과 감각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순간이다. 오늘날 기술과 예술은 서로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기술이 만든 영상, 데이터, 인공지능은 예술의 새로운 재료가 되었고, 예술은 기술의 인간적 의미를 되묻는 사유의 장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미디어아트(Media Art)이다. 미디어아트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과 달리 기술적 매체를 예술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다. 초기에는 기계적 장치나 필름을 이용한 실험이 중심이었지만, 오늘날에는 AI, VR, 로봇,..

가상현실 VR은 진짜 현실인가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 05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 오피스에서 회의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메타버스 속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저녁에는 VR 게임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협동 미션을 수행한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다. 1. 가상현실의 세계로 1) 가상현실이란 무엇인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은 사용자가 실제와 유사한 환경이나 체험을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하지만 VR은 단순한 시각적 착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인공적으로 재구성하여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기술적 장치다.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재런 래니어(Jaron Lanier)는 1980년대에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도로표지판은 거기에 있었다 / 과학기술의미래와상상04

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많은 표지판들을 마주치게 된다. 을지로2가, 을지로3가, 남산1호터널, 명동역과 같은 지명 표지판도 있고, 버스전용, 직진 후 좌회전, 좌회전 차량 직진 금지와 같은 교통 안내 표지판도 있다. 이 표지판들은 우리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표지판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안내 기능을 넘어선 다른 메시지들을 발견하게 된다. "과속단속구간", "무인단속카메라 작동중", "교통법규 위반시 과태료 부과"와 같은 문구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표지판들은 운전자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단속카메라가 작동하지 않거나 경찰이 숨어있지 않아도, 운전자들이 이런 표지판을 보는 순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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